백제가 왜 황산벌에 5000명밖에 보내지 못했을까
백제가 왜 황산벌에 5000명밖에 보내지 못했을까. 그 당시 백제도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했을 터인데. 이에 대해 TV에서 어떤 사람은 의문을 가지던데,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당나라 대군을 막기 위해 백제군은 좌우군으로 나뉘어졌을 것이다. 브루드워(컴퓨터 게임)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백제는 계백의 능력을 평가하거나 하여 5000동군으로도 신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상당수의 병력을 당나라 군대를 막는데 보냈다. 그 당시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를 통해 올 수 없었으므로 배로 왔을 것이다. 결국, 당나라 군선들의 군 상륙을 막아야했다. 양공을 당하면 더욱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제군은 상당수의 당나라 군대를 막지 못하고 상륙을 하게 했다. 내통자를 먼저 보냈던 것일까. 즉 상당수라고해도 수적에서 역부족이었던 백제 서군은 당나라군 상륙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백제는 멸망하고야 말았다.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몇 줄이다. 논문의 길고 짧음이 문제이겠는가. 질이 문제이다. 길이도 따질 필요가 없겠다. 길거나 짧거나 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겠다. 단지 논술에도 교과서가 있다고 틀에 얽매이게 하려고 하는 자들이 우스운 것이겠다.
추가해도,
그 당시 군 편제 역시 군을 나누는 것이었다. 1군이다 2군이다 식으로. 중국은 벌써였는데, 삼국지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실세가 되었을 때, 촉나라를 치기 위해 30만의 대군을 삼군으로 나누어 보낸다. 두 방면에서 공격해 오는 군대를 막기 위해 군대를 나누는 것은 더 당연하다 하겠다. 일본 천지천왕이 지원한 2만7천명의 군사는 제 3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배이기에 오히려, 당나라 군대의 피로가 덜했던 것일까. 배로 왔기 때문에 당나라 군대는 피로가 덜했으며 이는 백제군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을 했던 걸까. 신속을 기하기 위해, 백제군에게 더 큰 부담을 주기 위해 태안반도를 상륙지점으로 정했을까. 태안반도를 통해 들어와 피로가 덜했으며 이는 당나라군의 전투력에 보탬이 되었을까. 정령, 당나라 군대의 피로도는 백제군의 피해와 비례했던 것일까. 위로는 어려우니 백제의 영토를 점령해, 고구려를 위․아래로 압박하고자 했던 이세민의 이해득실이 작용을 했던 것일까. 이런 전술은 스타 크래프트 브루드워(컴퓨터게임)에서도 보여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