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
현재의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드러난다. 과거, 나도 천재가 경험할 수 있는 일들과 한국의 학교에서 완전히 왕따를 당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갖췄었다. 나는 고척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의 도움이 없이는 학교를 찾아가기가 힘들었고, 찾아가도 남의 반으로 갈 때가 있었다. 바보천치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태였겠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성당에서 하는 행사에서), 가톨릭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CF극을 하는데, 갑자기 대사가 생각나지 않아 웃음거리가 될 정도였다. 약(藥)CF였다. 그 당시의 사진이 있다. 나의 앞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밖에도 있지만 이쯤으로 하겠다. 이쯤이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 때도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 내가 왕따를 당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반 친구들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나를 걱정해 준 수진이란 친구는 서강대 물리학과(+전자과)를 갔는데, 수진이가 물리학과를 간 이유 중에 하나가 한글로 공식을 만들기 위함(한글의 국제화)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친구는 미국의 심리학자가 증명한 내용을 발표한 연도를 기준으로 6년이나 먼저 나에게 물었을 정도였으니, 우리 반 친구들은 EQ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는 별명이 에디슨이란 학생도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아인슈타인이었다. 퀴리 부인의 재능을 뒤집으면 아인슈타인의 재능이 된다. EQ가 높은 아주 뛰어난 우리 반 친구들이 나를 왕따로 몰 이유가 없었다. 반 친구들과 나는 얘기(토론)를 즐겼다. 나는 토론이나 얘기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나는 반 친구에게 처음으로 인간의 정신 능력은 차원이 증가함에 따라 증가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었다. 즉, 1차원에 있는 존재가 5차원으로 가면 정신 능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때는 능력의 확장이었다. 이와 동시에, 두뇌의 복잡성을 뜻할 수도 있었다. SF소설용으로 사용하면 되므로 문제는 없다. 고차원으로 가서 능력을 증가시킨 후 저차원으로 오다. 뭐 이런 것. 소설은 허구이다.
자녀가 학교로부터 고통을 받는 경우, 한국의 중학교부터는 한국의 학교를 때려치우는 게 좋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의 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게 좋다. 자녀의 재능을 집에서 키워 주면서 대신 교회나 절의 청소년 활동을 열심히 하게 도와주는 편이 훨씬 좋다. 한국의 학교교육 대신 어느 장소를 가든, 어느 나라를 가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잡초 근성을 키워 주기 위한 아르바이트, 재능에 중점을 두는 게 좋다. 학교성적만 좋다는 한국의 대학 졸업생들은 IMF한파에 우르르 무너졌다. 대학 死학년이라고 한다. 재능을 살린 박세리, 서태지는 여전히 잘 버티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가 초강력 슈퍼 뻥튀기 천억만 제곱 IMF한파라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그런 사람들은 IMF한파에도 오히려 돈이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