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문학관/에세이

내가 돌은 건가 한국의 중·고등학교가 돌은 건가

아전가드 2018. 7. 5. 18:37

[내가 돌은 건가 한국의 중·고등학교가 돌은 건가]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맙네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중간고사 후로 내가 답한 글(주관식)을 반 학생들에게 읽어 주며 정말 잘 썼어!! 정말 잘 썼지?”를 큰 소리로 연발하며 큰소리로 만점!”이라고 말하며 만점을 줬던 선생이, 다음 번 작문수업 때는 객관식 점수로 나를 완전히 깔아뭉갰다. “변성재가 누구야? 앞으로 나와!”, 전교에서도 너보다 형편없는 놈은 없다며 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 한국에서는 그런 황당한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들지도 못했다. ‘답사이로 막가였나 보다.

 

저 하우프트만(1912년 노벨 문학상), 아인슈타인(1921년 노벨 물리학상) 학창시절과 비슷하게 만들어 주시게요. 고맙지만 그 못지않은 일들을 많이 겪어서 이제는 지겹네요. 에디슨이 한국 중학교, 한국 고등학교에서 있으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죠. 글쓰기는 전교 1등이었지만 객관식은 전교 꼴찌였나 보네요. 저는 전두환세대랍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이해찬세대와도 연결이 되죠. 이해찬세대가 저주받은 세대라고요. 지랄 좀 그만 하시죠.”

 

그 작문 선생은 국어 선생이기도 했는데 랭보를 시로 이끈 이장발이나 악성(樂聖) 베토벤의 스승인 네페로 선생의 그릇 크기도 되지 못하겠다. 신경림 시인의 국어 선생님은 신경림 시인이 국어 시험지를 백지로 내자 시 다섯 수로 점수를 대신해 주겠다고 했다. 신경림 시인이 고등학교 2학년일 때의 일이었다.

 

나는 노벨 물리학상뿐만 아니라 노벨 문학상으로의 접근까지도 타격을 받았다. 랭보의 스승인 이장발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나는 노벨상을 3~4번 수상할 수 있을 정도의 업적을 꿈꿨다. 노벨 문학상, 노벨 물리학상,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을 정도를. 못할 것도 없었다. 서울대 지상주의와 획일교육을 완전히 초토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처량하게도 노벨 문학상 정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엄청난 노력이 있어야 가능성이 보일까 말까 하겠다. 노벨상을 꿈꿨던 이유 중의 하나는 서울대 지상주의와 획일교육을 침몰시키고 싶었다. 제 아무리 획일교육이 기고만장하다고 해도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앞에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20대 후반의 노벨 물리학상을 꿈꿨다. 부러졌지만 말이다. 그나마 상고 출신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서 천만 다행이다. 첫 번째 노벨상이라 더욱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은 1등 한 것을, 가진 명예, 재산 등을 자랑하지만 나는 아이큐가 두 자리라는 것을 자랑한다. 역사에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 영원한 아이큐 두 자리로. 내가 원하는 바다. 발달장애,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말이다. 강조한다고 손해 볼 것 없으니까. 전 세계 여러분, 저 아이큐 두 자리입니다. 돈 좀 벌어볼까. 내가 고작 몇 십 억 원, 몇 백 억 원으로 만족할까. 참새나 메뚜기가 미적분 해보라. 후후, 아이큐 네 자리가 미적분 하는 거랑 붕어가 미적분 하는 거랑 같나. 당연한 것과 경악의 차이. 대학생 때 대학문학상을 탄 적이 있다. 훗날에는 큰 백일장에서 입상한 적도 있고 말이다. 그 이외에도 말이다. 다시 신춘문예 등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나의 인생을 교육분야(교육학, 교육심리학 등)에 있어 업적 그 자체로도 만들 수 있을까.

 

분야는 다르지만 한국에서 아인슈타인, 하우프트만이 나올 수 없는 이유를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노벨 수상자가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노벨상의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들을 완전히 병신 취급하며 재능(달란트)을 죽이려고 안달인데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근접거리와 달란트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헤모글로빈 결핍증, 아전가드, 주재, 심령역학, 정신에너지 차원적 증가, 수정공산주의, 점성궤도현상, 매드라인, 양대성이론(특수양대성이론, 일반양대성이론), 후천성 다리휨, 인물비교분석적용학 등은 내가 만든 말이다.

 

학생들이 뭐를 잘못했기에. 그런 수준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외환위기 정도는 빌 게이츠 두세 명이면 끝났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발명가인 공학자 니콜라 테슬라나 인류 역사상 최고 창조적 두뇌인 다 빈치 정도는 한 명이면 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주재(우주적 재주)이다. 범재 < 영재 < 수재 < 천재 < 주재이다.

 

획일교육의 추종자들이 창의성의 존재를 앞설 수 있는 것은 한국의 학교 시험 문제를 잘 푼다 정도겠다. 은유법, 직유법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나보다 더 잘 알 테지만 상상력, 연관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력에서는 나를 상대하기가 벅차겠다.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란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다.

 

19991012일 밤 1035분 경, KBS1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방영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선생님이 나온다. 이론보다는 실제를 가르친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된다. 키팅 선생님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청자가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 50’중에서 열네 번째에 오른 영화로 1990년에 제작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의 주연은 로빈 윌리엄스, 에단 호크, 로버츠 숀 레너드이며, 감독은 피터 와이어다.

 

KBS2에서는 19991018일 밤 1000분 경,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를 방영했다. 주인공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다 마침내는 탈옥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쇼생크 탈출은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주연이다. 내가 쇼생크 탈출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냄새나는 하수구를 기어나가 희망의 낙원을 찾아가는 것이다. 새가 하늘 높이 날고 싶어 하는 것을 빼앗는 것은 틀림없는 죄악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바꿀 수도 있다.

 

냄새나는 하수구(한국의 중고등학교)를 통과해 희망()을 찾아 나선다. 날고 싶어 하는 새(어린이, 청소년)의 희망()을 빼앗는 것은 틀림없는 죄악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쇼생크 탈출에서는 하수구가 자유를 향해 나가는 문이지만 한국의 하수구는 어린이들, 청소년들의 꿈과 달란트(재능)를 죽이는 문이라는..

 

쇼생크 탈출은 시청자가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중 제19위에 오른 영화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방영된 지 6일 만에 방영된 쇼생크 탈출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중학교, 한국의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치욕이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인생이 천재 수학자 갈루아를 닮았다고 했다. 나는 박정희, 아우구스티누스, 노턴의 근접거리 인물인데 말이다. 미켈란젤로, 뉴턴, 테슬라, 에디슨, 존 내쉬, 이회창 등과도 비슷한 점이 있지만 말이다. 근접거리는 아니다. 근접거리는 인생이 아니라 재능과 업적으로의 일치, 비슷함이다.

 

어쩌면 나는 그래도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꿈과 목표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요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꿈과 목표는 뭘까.

 

공무원? 대기업 사무직? 건물주? 연예인? 아니면..

 

요즘 한국 어린이들과 한국 청소년들은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다. 부모의 욕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