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문학관/에세이 25

(에세이) 아뿡다라 페르마 Ver 3.0

[(에세이) 아뿡다라 페르마 Ver 3.0]·1. 소년한국일보(1983) : 소년한국일보 주최 주산급수별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소년신문이었다.·2. 대전일보(1984)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문을 돌렸던 신문이다. 지방신문이었다.·3. 한겨레신문(1991) : 나의 역사상 가장 먼저 나의 글을 기고했던 신문(일간지)이다. 한겨레(?) : 시사주간지로 내가 남긴 것을 개념까지 표절한 주간지이다. 그런다고 내가 모를 줄 알고(1995?). 그런 경우도 우연일까 기적일까.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30년 이상 악마한테 시달렸다. 대흥동성당에서 뭐를 봤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와 좀 비슷한 경우는 지금까지 딱 한 명 있었다. 나 말고 말이다. 지난 세기(20세기), PC통신을 할 때였다. 하이텔(Hi..

한국 대통령 아뿡다라 5.0 (버전업)

[한국 대통령 아뿡다라 5.0 (버전업)] · 1. 박정희 대통령 : 나와 근접거리가 작용하는 대통령 · 1966년 장면 전 총리가 영친왕(이은)도 입원했었던 서울 명동성모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장면 전 총리를 문병 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장면 전 총리(박정희 대통령을 보자 “수고 많으십니다.”)의 모습을 본 후 장면 전 총리에게 했던, 즉 정치를 못 하게 했던 것을 해제했다.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게 뭔 필요가 있었을까만. 하여간에 훗날 그 명동성모병원에서 내가 태어났다. 영친왕, 장면 총리와도 그렇게 조그만 인연이 되는 것일까.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근접거리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장면 총리(전 총리)는 8층(특실층)에 입원해 있었을 것이고 나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니 아마도 ..

이웅평 대위와의 우연한(?) 만남 (두 번째 버전)

나는 무임승차를 위해 손을 들었다. 차가 한 대 섰다. 나는 차에 탔다. 시간이 흐른 후 운전하는 사람이 나에게 북한에서 남한으로 전투기 몰고 귀순한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이웅평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너는 참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났다. 내가 바로 이웅평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덤덤하게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이웅평 대위는 계룡산을 훼손한 것을 본 후로도 뭐라고 말했다. 이웅평 대위는 청소년들의 성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퍼센티지를 얘기하기도 했다. 성관계 말이다. . 10~20분 정도 타고 가다 차에서 내렸다. 이웅평 대위는 그 당시 한국 공군 중령이었다. 좋은 경험이었을까.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던데 말이다. .

나와 컴퓨터의 인연 (선생님,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컴퓨터를 엄청나게 가지고 싶어 했다. 그 당시는 삼보 트라이젬이 인기가 좋았다. 삼보 트라이젬은 8비트 컴퓨터였다. 대우에서는 아이큐1000을 내놓고 있었다. · 한편, 금성은 삼보, 대우에 뒤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퍼스널 컴퓨터(퍼스컴)를 출시한 상태였다. ·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대흥초등학교는 금성 컴퓨터를 40여 대 정도 산후로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미래의, 정보화 사회에 뒤지지 않을 인재 양성을 원했나 보다. ·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나의 어머니께 “성재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세요. 앞으로는 컴퓨터가 유망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했다. 그 후, 나의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컴퓨터학원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나는 대전 한밭컴퓨터학원에서..

자녀 곁 스토리

어머니는 뜨개질하시며 나에게 이사악에 관한 얘기, 요셉에 관한 얘기, 모세에 관한 얘기 등을 들려주셨다. 이는 초등학교 3~4학년 때인가 생각이 된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간 얘기를 들으며 요셉에 관한 상상까지 했다. 요셉은 꿈해몽을 잘했음을 어머니께서 이야기해 주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어했다.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는 나의 EQ에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 유태인의 ‘베드 사이드 스토리’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베드 사이드 스토리란, 유태인스라엘의 어머니가 자녀가 잠이 들기 5분 전에 자녀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가리킨다. 나의 어머니는 ‘자녀 곁 스토리’를 행하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중력조절장치 (닥터슬럼프) VS 중력역전현상 (중국의 자존심은 시궁창)

드래곤볼, 닥터슬럼프를 남긴 만화가(토리야마 아키라)가 만화 ‘닥터슬럼프’에서 중력조절장치를 남겼다는 것을 지난 해인가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래전에 중력역전현상을 남겼는데 말이다. 세상에는 비슷하거나 조금이나마 연관이 되는 생각을 하는 독창적인 사람들이 있나 보다. 중력조절장치는 중력을 조절해 우주선을 운용하는 것이고 중력역전현상은 중력에 반발하는 척력이 있다면 그것을 극대화하면 항공모함, 잠수함, 탱크 등도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도 못지않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니 일본 사람의 상상력도 괜찮은가 보다. 「닥터슬럼프란 만화의 중력조절장치와 나의 중력역전현상」 . 중국인들에게 : 한국인은 아이큐 두 자리도 이 정도야. 인류 역사상 네 번째 창조적 두뇌라는 괴테 정도도 얼마든지 맞받아쳐..

과학적 생각들

나는 화이트홀은 방출만 하지 않을 것임을 떠올렸는데, 이는 막대자석의 원리를 블랙홀, 웜홀, 화이트홀에 적용시킨 상태로, 훗날에는 전자석까지, 좋은 말로는 연관능력이며, 심한(?) 말로는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언젠가, 어항을 보니 기포가 여러 개 있었다. 이로부터 나는 ‘우주가 하나밖에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저 기포가 우리 우주라면 다른 기포는 또 다른 우주가 아닐까. 어항 보고 나온 수준에 어련하랴! · 수학을 늦게 본격적으로 시작한 나는, 이론물리학보다는 ‘관찰물리학’과 ‘천체물리학’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발견도 과학이다. ·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정도전처럼 발해의 영토에도 관심이 많았다. 정도전을 알아서가 아니라, 고등학교 때의 사회과부도로부터 각 민족의 영토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4세기의 호랑도를 그린 지도를 보니, 요즘의 호랑도와 거의 같았다. 고구려와 백제 + 신라의 국경은 휴전선이고 백제와 신라의 국경은 지역감정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누구 말대로 역사는 도는구나. . 교실에 걸려 있는 태극기를 봤는데, 빨간색과 파란색의 경계는 휴전선과 비슷했다. 빨간색은 북한이었고, 파란색은 남한이었다. 위치까지 같았다. .

PC 통신의 시작

정권으로의 시도가 처량하게도 부러지자, 나는 랭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랭보 비슷하게 향했다. -훗날이다. 나는 랭보의 시집인 ‘지옥에서 보낸 한철(민음사, 김현 옮김)’을 1995년 12월, 대전 문경서적에서 사게 되었다. · 랭보 비슷하게 향하다 1992년 12월, 나는 처음으로 PC 통신을 시작했다. 하이텔에 가입함으로써 나의 파란 많던 PC 통신 생활은 시작되었다. 획일교육을 향한 나의 증오가 나를 PC 통신의 세계로 이끌었나 보다. · PC 통신을 시작한 후 몇 년간, 세계적인 업적이 없었던 나는 별거였다. 내가 주장한 ‘심령 에너지 차원적 등가’는 수학적 증명이 없어 가설로만 그치고 있던 상태였고,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디자인한 태상기(太上旗) 역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 시간은 ..

수면과 기억력의 상관관계

대다수의 한국 어린이들, 한국 청소년들은 획일교육의 추종자들에게 너무 처참할 정도로 짓밟혔다. 미국의 심리학자가 ‘수면과 기억력의 상관관계’를 발표한 연도를 기준으로, 6~7년이나 먼저 나에게 ‘수면과 기억의 연관성’을 물었던 그 친구도 역시 재능을 살릴 수 없었다. 한국은 오로지 대학입시뿐이었다. 교육제도가 뭐 같다고 해도 청소년들이 논문이나 주장을 제출할 수 있는 데라도 설립했어야 했다. 획일교육에 환장했다고 하더라도, 독창적인 생각을 한 사람을 인정할 정도는 됐어야 했다. · 그 친구가 미국에서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겠다. 미국의 심리학자보다 그 친구와 내가 먼저 증명했어야 했는데, 미국에서 존재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 친구가 미국에서 있었다면 많은 발견을 이룩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