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글모음/사회·교육

들쥐근성과 소떼근성은 다르다.

아전가드 2007. 4. 29. 22:57

  지난날, 나도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엄청나게 싫었다. 비겁했는지 나는 죽음을 선택하지 못했다. 하느님께 애원하다시피 했다. 연옥의 끝이라도 좋으니, 나를 죽여 달라는 식이었다. '내가 아기 때 나를 죽이셨다면 좋았을 텐데'였다. 지금은 아니다. 좌절만 하지 않는다.

  나는 나와 다른 존재를 존경했다. 나는 내가 남과 다르게 자라기를 바랬다. “‘다른 사람보다 유명해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상태가 낫다’고 가르쳐라” 나는 유태인의 사고방식을 좋아했다.

  유학 세계관이 설친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돌림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던 상태가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인들의 좋은 점도 많은데, 일본의 나쁜 점만 잘 배우고 있다. 욕부터 배운다고 다른 민족의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잘 배우는데, 아주 좋지 않은 수준이다. 다른 민족의 좋은 점을 블랙홀 이상의 흡수력으로 흡수해 우리나라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한민족이 천년, 만년 번영하며 산다. 후손들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줘야 할 의무가 조상들인 우리에게 있다.

  왕따현상의 경우, 왕따를 선동하는 학생들 부모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을 증명시켜서는 안 된다. 자녀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는 자녀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부모의 의무이다.

  뛰어난 사람들은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멸시를 받는 상태에 분노하여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겠다. 조금만 달라도 정신적인 피투성이로 만드는데, 어떻게 다 빈치, 에디슨 같은 사람들이 버틸 수 있으랴! 똑똑해서 탈이다. 누구들은 거지 나라가 될 수 있는 방법만 열심히 잘하고 있으니 말이다. -들쥐근성과 소떼근성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