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글모음/사회·교육

서울대 지상주의는 한국 천재, 주재들의 씨를 말렸다.

아전가드 2007. 4. 21. 21:19
정의수호라고. 무슨 정의인가. 학벌(서울대 지상주의)들의 정의인가. 아니면 위선의 정의인가. 이도 아니면 입만 살은 정의인가.

여전히 뜻을 못 알아듣는 간판대, 학벌주의 추종자들이 몇천 년 몇만 년 이상을 이룩해도 이룩하지 못할 수준을 이룩하고도 싶었다. 이럼 카스트 상위에 위치하는 걸까. 서울대 획일 머리들이 다 덤벼도 감히 넘보지 못할 아인슈타인, 에디슨 계열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있어야 했다. 그런 식으로 포장 방어하며 에디슨 아인슈타인 계열까지 죽였던가. 김옥균이 나오는 얘기가 있다. 한국의 뭐 같은 수준을 짓이겨 놓기 위해 20~30대까지 서울대 전 역사가 이룩한 상태를 능가하려고 했건만, 신은 이것까지는 허락을 하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짓밟히지만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 14세의 나이에 나는, 미 버클리대 박사인가 주장한 것을 나에게 10년 먼저 독창적으로 적용하고 훗날 그가 발표한 년보다 2년 먼저 PC통신의 대표적인 게시판에 올려놨었다. 한국의 신문에까지 그 박사는 알려졌던데. 결국, `미국의 박사, 그냥 가져`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도 만족한다. 획일교육을 바탕으로 또한 그 장자라고 할 수 있는 학벌의 무리들이 설치는 판국에.

후후, 괴테 별거 아니다. 인류 역사상 네 번째 두뇌 밖에 안 되니까. 별거 아니다. 아무리 아인슈타인 수준을 짓밟혔어도 지금 수준으로도 독일의 최고 두뇌이자 지성이라는 괴테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고작 미국의 박사에게 가지라고 한 것 말고도 가능하다.

기회를 박탈당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니 흥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심리학자가 수면과 기억력의 상관성을 발표한 년으로부터 6~7년 먼저 나에게 의문시하며 물어왔던 부반장도 실력을 살릴 수 없었다. 오로지 학교성적순이었으니까. 오로지 서울대, 연고대 몇 명 보냈느냐가 자랑거리 아니었던가. 별것도 아닌 실력들이 정말 가소로운 얘기만 늘어놓는다. 그냥 기득권의 똥종이 잃을까봐 걱정이 되어서라고 하는 편이 솔직하겠다. 그런 수준에 경훈이뿐만이 아니라 지방대 이하 수준들까지 약 올리는 건가. 어쨌든 그 부반장과 나의 대화가 미국의 심리학자에 의해 정설이 된 것에 만족한다. 그 심리학자의 얘기는 동아일보 3면에 사진까지 실렸다. 부반장은 대단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기회의 평등이라, 정말 서연고 아닌 학생들 열 받겠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영재교육연구실장으로 있는 조석희 박사의 추천까지 받은 책 중 정경훈이 나오는 책이 있다. 경훈이는 수학천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뭐 같은 수준은 그런 아인슈타인의 근접거리인물까지 내동댕이쳤다. 간판대 아니면 다 별거 아닌 상태로 보이는가 보다. 인물비교분석적용학이란 것의 창시자도 꿈꾸던 나로서 대단히 불쾌한 일이다.

나도 프로이트처럼 새로운 학문을 창시하고 싶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이다. 나는 인물비교분석적용학이다. 근접거리와 스스로인식상태. 그러면 남이인식상태는. 콤플렉스라고 몰아 부치는데 에스트리아는. 학벌들이 학벌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을 콤플렉스로 모독하기에 만든 말이 에스트리아였다. 드러커까지 가다니. 서울대 지상주의 종자보다 지방대 이하 수준들이 노벨상, 즉 창조적 수준에 접근하기 용이할 것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나는 지난 세기에 노스트라다무스 박살내고 격암유록 흔들려고 했는데, 서울대 지상주의 무리는 여전히 남의 수준 베끼는 수준 밖에 못 된다. 고시촌 수준에 암기력 수준만 탁월해서일까.

윤은기 박사 말로는 앞으로는 편집적인 열정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던데. 나의 생각으로 대표적인 인물은 영화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인 것 같다. 프로이트의 창조품 열심히 사용하려고 하는데 좀더 분발하기를 바란다. 나는 인물비교분석적용학에 대해 좀더 신중히 체계화를 시도해야 되겠다.

기득권의 똥종이를 잃게 될까봐서 걱정이 될까. 서울대 지상주의 실력이 오히려 책 좀 읽었다고 암기력 수준에 머리에 들은 것은 있다고 아닌 척 포장하며 교묘하게 학벌주의 유지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열등감은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암기력은 몰라도 창조력에 있어서는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이 안 부럽다던 사람이었다. 자기 제자 논문이나 다른 학자 논문 표절해 발표하는 한국 대학문화에 뭐를 이룩할 수 있을까.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말이다. 나는 55명 중에 53등도 했던 아이큐가 두 자리였으니 서울대 보내기에 환장한 수준들이 볼 때 얼마나 바보 같았겠는가. 갖은 조롱과 짓밟힘에도 아인슈타인처럼 굽힘이 없었다. 그렇게 잘나서 학벌들의 실력은 암기력 실력만일까. 한국에서나 하버드대에서나 이어령 교수를 만나게 된다면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다. 이제는 미국식 교육을 해야 한다고.

기회의 균등이라, 좋다. 경제 경영 쪽인 윤은기 박사도 주장을 했던. 그런데 학벌 수준들은 잘 포장되어 있는 위선들이다. 허나, 눈에 보이는 뻔한 수준으로 어찌 손무나 제갈량을 상대할 수 있을까. 역시나 위선들, 서울대 지상주의 무리들의 세기는 끝났다. 21세기를 간파하지 못하는 수준에게는 침몰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한국의 아이큐 체계도 뒤흔드는 것 역시 꿈 목표로 했던 사람이다. 멘사까지 영향을 받을까. 이래야 하나라도 더 이룩하는 것이니까. 콤플렉스 열심히 찾으라. 언제까지 서울대 지상주의(학벌주의)를 유지하는지 똑똑히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