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글모음/사회·교육

노벨상 안 나온다고 투덜 말고 잘 뽑아 제대로 가르쳐라!

아전가드 2008. 2. 6. 12:31

 1


  고시공부는 잘 되어 가는지. 불쌍한 것은 알지만 대학은 고시촌이 아니라는데 고시공부는 집에서 하고 대학을 학문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줄 생각은 없는지. 서울대가 변해야 다른 대학도 변하는 묘한 상태이다.


  자신의 재능(적성)이 뭔지도 모른 채(특히 이공계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수준이), 유망하다는 말만 믿은 채 법학과도 아니면서 고시공부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 굉장히 불쌍하다. 그러면서 쪽팔리게 연구비 타령을 한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님도 이리 생각하지 않을까. 노벨 물리학상이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노벨 물리학상에 접근할 만한 사람을 먼저 뽑아야 하지 않을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서울대란 간판에 미쳐 있는 그룹에서 나오지 않는다. 정경훈 같은 이들을 도와줌으로써 나온다. 성적을 잣대로 재서 들어가는 대학의 분야가 그 무슨 가치가 있으랴. 이제는 간판을 위한 대학을 벗어나 학문적 업적을 생각할 때이다.


2


대전 둔산동 대훈서적(둔산동 타임월드 주차장동 2층)에 들렸는데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책의 제목은 [보통엄마의 천재아들 이야기(이길순 저)]였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전에 잡지에서 한국 최고의 아이큐라고 하면서 떠든 적이 있었고, 또한 하이텔의 플라자에서도 몇 번 언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천재냐고 하는 수준의 글도 있었다. 나는 보통 엄마의 천재아들 이야기의 내용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 내가 볼 때도 정경훈은 수학천재이다. 왜냐하면, 정경훈은 3월 16일이기 때문이다.


정경훈이 수학을 잘 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정경훈은 3월 16일의 재능을 그대로 보여준다.


3월 16일의 재능은,


플린더스(1774.03.16~1814.07.19): 영국의 항해사로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의 상당부분을 지도로 제작했다.

미타그 레플러(1846.03.16~1927.07.07): 스웨덴의 수학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스웨덴 최고의 수학자였다. 미타그 레플러는 노벨의 연적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연적이란 연애의 경쟁자라는 뜻이다. 노벨이 좋아하는 여자가 미타그 레플러에게 애정을 보이자 노벨은 그에 대한 반발로 노벨상에 수학을 넣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 전설로 하기에는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하여간에 수학천재에게 여자를 빼앗긴 노벨은 재산도 무의미했나보다.

매카이(1875.03.16~1956.08.31): 미국의 시인, 극작가, 고금의 민속문학을 원용해 미국의 야외극을 발전시켰다.

엥겔레(1911.03.16~1979.02.07): 죽음의 천사. 1943~1945년 아우슈비쯔 죽음의 수용소에 근무했던 나치의사. 독가스시설 운영을 지휘했고 인종연구를 위해 수용자들을 상대로 의학실험을 실시했다. 도망 다니며 살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3월 16일: 항해사, 수학자, 시인, 극작가, 의사. 죽음의 천사라고 해서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재능의 쓰임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므로 엥겔레가 미국에서 있었다면 노벨 생리의학상에 다가갔을 것이다. 엥겔레는 나치시대를 만난 게 불운이다.


이제, 정경훈이란 한국 최고의 아이큐와 비교한다. 3월 16일에 대한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정경훈: 한국 최고의 아이큐로 불린다. 아이큐가 157이라는데 이는 케디 위스크 테스트로 측정한 아이큐로 160이 만점이다. 이를 우리가 아는 보통 아이큐로 하면 경훈이의 아이큐는 187에도 맞먹는다. 경훈이의 주민등록번호는 860316-1******이다. 따라서, 생일은 3월 16일이다.


① 정경훈과 3월 16일의 재능 비교


  ┌────┰──┬──┒   ┍━━━┯━━━━━━━━━━━━━━━┓

  │    학년┃ 3  │ 4  ┃   │ 학년 │   세부능력 및 행동발달상황   ┃

  │교    과┃    │    ┃   ┝━━━┿━━━━━━━━━━━━━━━┫

  ┝━━━━╋━━┿━━┫   │      │논리적이며 산수의 문제해결, 계┃

  │도    덕┃ 미 │ 수 ┃   │  1   │산능력이 뛰어나다. 글씨쓰기,그┃

  ├────╂──┼──┨   │      │림그리기가 약하다.            ┃

  │국    어┃ 수 │ 우 ┃   ├───┼───────────────┨

  ├────╂──┼──┨   │      │예능방면에 약하나 수계열 파악 ┃

  │수    학┃ 수 │ 수 ┃   │  2   │능력이 우수함. 조리있게 말하는┃

  ├────╂──┼──┨   │      │노력이 필요.                  ┃

  │사    회┃ 수 │ 미 ┃   ├───┼───────────────┨

  ├────╂──┼──┨   │      │자습을 잘하며 산수는 우수함.두┃

  │자    연┃ 수 │ 우 ┃   │  3   │뇌가 명석하여 뛰어남.         ┃

  ├────╂──┼──┨   │      │                              ┃

  │체    육┃ 양 │ 우 ┃   ├───┼───────────────┨

  ├────╂──┼──┨   │      │체육기능이 떨어지나 수리능력과┃

  │음    악┃ 미 │ 우 ┃   │  4   │사고력이 좋음. 주관이 뚜렷하고┃

  ├────╂──┼──┨   │      │의지가 굳으며 고집이 있음.    ┃

  │미    술┃ 우 │ 우 ┃   ┕━━━┷━━━━━━━━━━━━━━━┛

  ├────╂──┼──┨출    처: 보통엄마의 천재아들 이야기 50페이지

  │실    과┃    │ 우 ┃기록장소: 대전 둔산동 대훈서적. 플러스펜 사용.

  ┕━━━━┻━━┷━━┛기록마침: 1998년 01월 12일 15시 05분 20초.


[3학년에는 실과과목이 빠졌고, 1,2학년 성적은 '수우미양가'로 분류되어 있지 않음]


수학성적은 모두 [수]이다. 세부능력 및 행동발달상황에도 수학에 대한 평가가 좋다. 또한, 3월 16일의 재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국어의 성적도 좋다.


미타그 레플러(1846.03.16~1927.07.07): 스웨덴의 수학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스웨덴 최고의 수학자였다. 미타그 레플러는 노벨의 연적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연적이란 연애의 경쟁자라는 뜻이다. 동아 새국어사전(문학박사 이기문 감수)의 1443페이지에 나온다. 한문으로는 戀敵(연적)이다.


② 근접거리이론(근접거리정리)으로의 판단

 

역시나 정경훈과 근접거리가 작용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참고로 변성재와 근접거리가 작용하는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니진스키의 근접거리5는 두레예프이다. 슈베르트의 근접거리4는 모차르트이다. 롬멜의 근접거리2는 몽고메리이다. 뉴턴의 근접거리4는 스티븐 호킹이다.


정경훈과 근접거리가 작용하는 인물을 찾기에 앞서 정경훈의 특성을 알아보자.


정경훈의 특성: 경훈이가 3,4학년을 통틀어 모두 (수)를 받은 과목은  수학

               이 유일하며, 도덕이나 사회, 음악 과목은 (미)를 받았고

               체육과목은 (양)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경훈이는 교내에서

               수리능력상과 수학과 우수상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나머지

               분야는 별로 신통치 않아보였다.

                          [보통엄마의 천재아들 이야기 51페이지 중에서]


               경훈이 역시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있었다.


이제부터 경훈이와 비슷한 인물이나 거의 똑같은 인물이 있는지 확인해본다. 3월 16일에는 없으니 3월 15일을 따지면 여기는 노벨 생리의학상이고, 다시 3월 14일로 가본다.


     <──────────────┬──────────────>

                                정경훈 

  <────────────────────────────────>

    3.6                  3.14    3.16                          3.26

                      아인슈타인        


3월 14일에 아인슈타인이 있다. 첫손가락에 드는 낙제생에다 선생님의 속을 지지리도 썩인 수준이었다. 그가 다닌 학교도 한국의 학교처럼 주입식을 강요하던 수준이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흥미 없는 학과목과 씨름한다는 게 도우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다음 글은 ‘천재들의 학창시절(진선출판사)’에 있는 내용이다.


  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학교의 성적만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버림받았던 낙제생이 뒷날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예는 얼마든지 많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 대표자를 꼽는다면 뭐니뭐니 해도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그의 일화는 학교 성적이 뒤떨어진 학생들에게 무한한 희망이 되어 왔다. 아인슈타인의 일화는 절대로 전설이 아니다. 첫손가락에 드는 낙제생에다가 선생님의 속을 지지리 썩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머리가 남보다 뒤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흥미 없는 학과목과 씨름해야 하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학교 교육방침을 따르지 않아 선생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급기야는 학업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몰고 오게 된 것이다.

  유년시절의 아인슈타인에게서는 천재적 특징이란 손톱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발육이 늦어 말을 늦게 배웠기 때문에 부모들은 바보천치가 아닌가 하고 근심할 정도였다. 말을 배운 후에도 더듬거리기가 일쑤인데다가 도우지 말이 없었다. 이를 걱정한 부모는 여자 선생님을 가정교사로 두었는데, 그 가정교사는 대뜸 아인슈타인에게 '게으른 신부님'이란 별명을 붙이고 말았다. 그저 말만 더듬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게을렀기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몸이 피곤해질 만한 운동--- 달리기, 뜀뛰기 같은 것은 질색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남부 독일 울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보다 조금 전에 이 마을에서 조그마한 전기가게를 벌였으나 생활이 빠듯할 정도였다. 다시 뮌헨으로 가서 동생인 뒤나모스와 함께 계량기와 아크 등의 제작에 손을 대었으나 여기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거기서 가톨릭계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유태인은 학급에서 자기 혼자였지만. 그것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후 11살 때, 9년제인 루이트폴트 중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이때부터 학교생활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아인슈타인은 그때를 회상하며,


  "국민학교 선생님은 하사관 같았고 중고등학교 선생님은 장교 그대로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학생에게 불안감을 주면서 강압적인 제재방법으로 교육을 시키는 학교생활 때문에 배움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러한 학교생활로 말미암아 연구의 즐거움도 신성한 탐구심도 싹틀 수가 없었던 것이다. 관찰이나 연구의 즐거움이란 무턱대고 위에서 내려오는 숙제나 연습장에서 생겨날 수는 없다.


  "아무리 건강한 맹수라 할지라도 배부를 때 먹이를 주면서 먹으라고 채찍질해 보았자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리게 할 뿐이다."


  그는 뒷날 그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국어와 산수---뒤에 가서 수학까지도---는 처음부터 성적이 좋았다.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어와 역사는 재미가 없어서 멀리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성적도 떨어지게 되었다. 그가 싫어하는 학과는 공부하는 시늉도 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규율과 질서를 존중하는 선생님 눈에 거슬리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이렇게까지 빈정대기도 하였다.


  "제발 학교를 그만두어 주었으면 고맙겠구나."

  "하지만 제가 뭐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항의라도 하게 되면 그 교사는 정색을 하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그야 물론 자네를 퇴학시킬 이유야 없지. 하지만 퇴학을 못 시키란 법도  없어. 자네의 그 멍청한 수업태도만 하더라도 규율을 문란시키고 학급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나?"


  교사의 평판이란 말이 아인슈타인에게는 자유의 파괴라는 말로 들렸다. 이에 대해 뒷날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학교에서 엄격한 제재나 권위를 휘둘러 가면서 교육을 행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학생들의 순박한 마음과 자신을 잃게 하여 결국 비굴한 인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게는 체육시간이 마치 군대생활 같았다. 평생을 통해 군사훈련이라고 이름 붙은 것은 덮어놓고 거부해온 그에게 군대생활 같은 체육시간이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다. 그때를 비웃는 어조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음악에 발맞추어 즐거운 듯이 행진하는 친구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그런 친구들한테는 몸뚱이에 등뼈만 있으면 충분한데, 좋은 머리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건 하느님의 실수가 아니고 무엇이랴."


  젊은 아인슈타인에게는 언젠가는 한 번 치러야 하는 병역의 의무가 몹시 고민거리였다. 어려서부터 군대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군악소리에 발맞추어 행진하고 있는 군대 행렬과 마주쳤을 때, 그의 부모가,


  "너도 크면 저렇게 군인이 되어 행진할 수 있게 된단다."


  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어른이 되어도 저런 쓸개 빠진 인간은 되지 않을래요."


  이런 소년기에 그가 15살이 됐을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밀라노에 있는 친척 집으로 이사하게 되자 뛸듯이 기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지긋지긋한 학교와 병역을 피하게 되는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기대했던 것처럼 행운의 여신이 손짓한 것은 아니었다. 밀라노의 친척 집으로 가는 것은 부모와 누이동생 뿐이었다.


  "너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치를 때까지, 그러니까 적어도 1년은 뮌헨에 있어야 해."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아인슈타인은 뮌헨에 외톨로 남아 대학생처럼 골방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의리고 체면이고 뭐고---사실 말이지 흥미 있는 과목은 수학뿐이었다---뮌헨을 떠날 생각에서 학칙에 어긋나지 않을 만한 묘한 계략을 생각해 내었다. 의사의 아들인 친구에게 부탁해서


  "아인슈타인은 신경쇠약으로 인하여 이탈리아에 있는 양친과 함께 반 년 동안 전지요양을 할 필요 있음."


이라고 하는 진단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루이트폴트 중고등학교에서는 두말없이 허가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인슈타인은 밀라노에 있는 양친 곁으로 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그 나름대로의 장래 설계가 있었다. 우선 그는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성적증명서 한 통을 떼어 달라고 했다. 그 증명서에는 수학 성적이 특출하다는 기록도 들어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속셈으로는 앞으로 이과 계통의 고등전문학교에 들어가고자 할 때 유력한 추천장이 되겠기 때문이다.

  밀라노에 와서도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때 같아서는 학교를 집어 치우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꽤 시간이 흐른 다음, 그것도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마지못해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당시의 이 대학은 독일을 제회하고는 중부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공과대학이었다. 그러나 이 대학은---아인슈타인에게는 천만다행이었지만---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도 입학할 수가 있었다. 물론 입학시험은 있었다. 수학만은 흠잡을 데 없는 만점이었지만 외국어, 동물학, 식물학에서는 완전히 잡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입학시험에 떨어진 것은 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뒷날 그는 이렇게 인정하였다.

 

  그러나 입학시험에서 보인 그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은 교수회의에서 화제가 되었고, 드디어는 공과대학장에게도 이 사실이 보고되었다. 학장은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뮌헨에서 마치지 못한 학과목을 스위스에 있는 학교에서 마치도록 주선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 공과대학에 다시 시험을 치르도록 권하였다. 학장은 아로우 주립 고등학교를 추천하여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학장의 권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뜻하지 않은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로우 학교의 분위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워 실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1년 후에는 주립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취리히 공과대학에 무시험으로 입학이 허가되었다. 이리하여 16세 때 입학시험에 낙방했던 그 대학에, 33세에는 교수가 되고 42세에는 광양자(光量子)를 발견한 공적으로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Albert Einstein(1879.03.14~1955.04.18) 독일의 물리학자.

남부 독일 울름에서 태어나 스위스 연방 공업대학을 졸업하고 1921년에 동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14년 베를린 대학 교수, 1933년 나치스에게 쫓겨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 교수가 되었다. 상대성 원리 등 수많은 업적에 의하여 1921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평화운동의 지지자로서도 유명하다. 주된 저서로는 「특수 및 일반상대성 원리」(1917)가 있다.


이상이 [천재들의 학창시절(게르하르트 프라우제.이인식 옮김, 진선출판사)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전기이다.


놀라울 정도로 정경훈과 아인슈타인은 일치를 이루고 있다. 아인슈타인, 정경훈은 근접거리2이다.


정경훈은 아인슈타인과 거의 같은 상태이며 정경훈이 처한 상태 역시 아인슈타인이 처했던 상태와 같다.

                                            ┏━━━━━┯━━━━━┓ 

 표로 나타내면,                             ┃1879.03.14│1986.03.16┃

┌─────────────────────╂─────┼─────┨ 

│          특                  성          ┃아인슈타인│정  경  훈┃

├─────────────────────╂───────────┨ 

│   별               자               리   ┃   3단계 물고기자리   ┃

├─────────────────────╂───────────┨ 

│   수                                학   ┃  뛰어남  │    수    ┃

├─────────────────────╂─────┼─────┨ 

│   체                                육   ┃  혐오함  │  저조함  ┃

├─────────────────────╂─────┼─────┨

│   말               솜               씨   ┃  약했음  │ 지적받음 ┃

├─────────────────────╂─────┼─────┨ 

│             성적에서 최고는              ┃국어,수학 │국어,수학 ┃

├─────────────────────╂─────┴─────┨ 

│         성적에 대한 주위의 의견          ┃  수학만 꾸준히 좋다  ┃

├─────────────────────╂─────┬─────┨ 

│         수학에 대한 타인의 평가          ┃매우뛰어남│매우뛰어남┃

├─────────────────────╂─────┼─────┨ 

│         처해있던 교육제도의 상태         ┃ 획일교육 │ 획일교육 ┃

├─────────────────────╂─────┼─────┨ 

│         초중고 교육에 만족했나요         ┃  불만족  │  불만족  ┃

├─────────────────────╂─────┼─────┨

│         문제아로 낙인 찍혔나요           ┃  그렇다  │  그렇다  ┃

├─────────────────────╂─────┼─────┨

│    학교를 그만둘 정도의 문제점 있었나    ┃  그렇다  │  그렇다  ┃

├─────────────────────╂─────┼─────┨

│              고집이 센가요               ┃  그렇다  │  그렇다  ┃

├─────────────────────╂─────┼─────┨

│            주관이 뚜렷한가요             ┃  그렇다  │  그렇다  ┃

├─────────────────────╂─────┼─────┨

│            두뇌가 명석한가요             ┃  그렇다  │  그렇다  ┃

├─────────────────────╂─────┼─────┨

│            두뇌가 뛰어난가요             ┃  그렇다  │  그렇다  ┃

├─────────────────────╂─────┼─────┨

│            의지가 굳은가요               ┃  그렇다  │  그렇다  ┃

├─────────────────────╂─────┼─────┨

│            사고력이 좋나요               ┃  그렇다  │  그렇다  ┃

┝━━━━━━━━━━━━━━━┳━━━━━╋━━━━━┿━━━━━┫ 

│ 중간평가:                    ┃ 아 이 큐 ┃ 170 정도 │ 187 정도 ┃

│                              ┗━━━━━┻━━━━━┷━━━━━┫

│  이상에서 보듯, 정경훈은 교육만 제대로 되면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  능가도 할 수 있는 큰 재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정경훈은┃

│  아인슈타인과 너무도 흡사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

┕━━━━━━━━━━━━━━━━━━━━━━━━━━━━━━━━━┛ 


경훈이 엄마에게:


경훈이 엄마는 경훈이에게 과학동아, 월간과학 뉴턴을 나올 때마다 사다주면

됩니다. 과학동아나 월간과학 뉴턴은 경훈이에게 엄청난 도움을 줄 겁니다.

                                                  [1998.01.12.23:12:03]


아인슈타인처럼 정경훈은 체육이 안 맞는 것이다. 나중에 정경훈은 군대 입대를 굉장히 꺼려할 수준도 된다. 아인슈타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학교를 다닐 때에도 군대를 필히 가야하는 의무가 있었는데 한국 역시 장애자가 아닌 이상 군대를 가야하는 게 필수이다.


어쨌든, 정경훈은 어느 학교를 들어가야 할까. 경훈이 엄마는 참고로 하면 좋을 것이다.


정경훈의 재능: 항해사, 수학자, 시인, 극작가, 의사. 아인슈타인과 근접거리2가 작용함으로 물리학과를 가도 된다. 그리하여 이론 물리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


③ 정경훈이 가야하는 학교


수학을 꿈꾼다면,  과기대 수학과, 포항공대 수학과에 진학한 후  프린스턴

                  대학교로 유학을 가 한국 최고의 수학자에 도전할 수 있

                  다. 

물리를 꿈꾼다면,  과기대 물리학과나 미 MIT 공대,  캘리포니아 공대에 진

                  학해 꿈을 펼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론 물리학자가 되

                  면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필적할 만한 능가도 할

                  만한 물리학자가 될 수 있다. 케임브리지대 역시 추천할

                  만한 대학이다.


정경훈은 노벨상에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경훈이 한국의 교육제도 때문에 재능을 살리지 못한다면 정경훈은 어떤 직업을 찾아야만 할까. 소프트웨어 상점이라도 열어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아야 한다. 재능을 살린 수준하고 소프트웨어 상점 여는 수준하고는 차이가 엄청나다. 소프트웨어 상점을 하면 많아야 100~200만원 되겠지만 재능을 살리면 100~200만 달러도 무난하다. 더군다나 재능을 살리면 국보급 존재에다 인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자신의 이름이 남으므로 후손들에게도 영광이다. 어떤 게 더 좋은지 확실히 드러난다. 재능이 없다면 별 상관없겠지만 있다 면은 재능을 살리는 게 훨씬 유익하다는 점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더라도 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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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글은 10년 전에 남긴 글인데 씹었나 보다. 그 후 경훈이를 카이스트라도 이끌어 줘야한다고도 주장을 했는데. 천재가 백 명, 백만 명 태어나면 뭐하나. 제대로 교육이 없어 다 침몰하는 걸. 한국과 미국의 차이다.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재능이 있으면 제대로 이끌어주려고 하는데 한국은 죽이지 못해 안달하거나 제대로 이끌어 주지 못한다. 오로지 서울대 서열이다. 대학입시 때 1등부터 4천등까지 데려가면 끝이다. 연고대는 다음이다. 세계 어느 대학이 그런 짓을 하나.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 다 덤벼도 아인슈타인 하나 못 이긴다. 세종대왕은 장영실을 제대로 이끌어 줬는데 말이다. 좋은 전통을 팽개쳐 버렸을까. 영어몰입교육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과학교육이다. 기초과학 포함이다. 오죽했으면 미화 100달러 지폐에 프랭클린(미국 과학자, 작가, 정치가)이 들어가 있을까. 1달러 지폐에는 워싱턴이 들어가 있다. 송유근은 어떨까. 10년 뒤의 송유근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인하대를 믿겠다. 아인슈타인형 영재였던 경훈이는 현재 어떻게 되어 있을까. 중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말이다. 현재 미국에서 유학중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한국에서 안 되면 미국에라도 가야 한다. 그런 재능의 침몰은 개인의 손해를 넘어 전 인류의 손해이다. 1세기에 몇 명 태어날까 말까한 수준이거나 1,000년에 몇 명 태어날까 말까한 수준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