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글모음/종교·철학

성녀 마리아 고레띠 효과

아전가드 2010. 5. 11. 15:45

- 9월 순교자성월에 -


☞ 예수님은 사두가이파의 유치하단 물음에 하늘나라에서는 결혼하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다음은 마태오 복음이다. 9월 21일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이다.


***


마태오 22:23~22:33


23  그 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24  "선생님, 모세가 정해 준 법에서 '어떤 사람이 자녀가 없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5  그런데 우리 이웃에 칠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결혼을 하고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그 동생이 형수와 살게 되었는데

26  둘째도, 세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째까지  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27  그들이 다 죽은 뒤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8  칠 형제가 모두 그 여자와 살았으니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

     습니까?

29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성서도 모르고 하느님의 권능도 모르

     니까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30  부활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

31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하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아직 읽어 본 일이

     없느냐?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사악의 하느님이요, 야곱의 하느님이다' 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33  이 말씀을 들은 군중은 예수의 가르치심에 탄복하여 마지 않았다.


***


☞ 그렇게 말씀하신 하느님(성자)은 근데, 이승에서 부부를 했던 사람이 함께 있지 못한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예에서 보듯 말이다.


***


① 1839년에 다시 박해가 일어났다. 조카 되는 이가 찾아와 시골로 피신하기를 권하셨다. 그러나 체칠리아 성녀는


“나는 늘 순교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아들과 함께 죽겠다.”고 말하며 피신하지 않았다. 일찍이 신유년 박해 직후에 마재에서 곤궁에 시달릴 때 체칠리아 성녀는 이런 꿈을 꾸었었다. 어느 날 밤, 꿈에 남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천국에 방 여덟이 있는 집을 하나 지었는데 방 다섯은 벌써 차고 셋만 남았오. 그러니 생활의 곤궁함을 잘 참아 받드시오. 그런 뒤에 우리를 만나러 오도록 하시오.” 하였다. 실로 그녀의 가족은 모두 여덟이었는데 신유년 박해를 겪어 이미 다섯 식구가 하늘 나라로 갔고 세 식구만 남았다. 체칠리아 성녀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꿈 속에서 남편이 한 말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곤 하였다. -167p


(중도생략)


더 답변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체칠리아를 다시 옥에 가두었다. 그 뒤에도 체칠리아는 다섯 차례의 문초를 받았고, 그 때마다 50여 대씩의 곤장을 맞아 도합 250여 대의 곤장을 맞았다. 그래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당시의 법률로써도 어린 아이나 고령의 늙은이는 칼로 목을 베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체칠리아 성녀는 다섯 달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열 두 차례의 문초를 받고 매를 맞았다. 이해 10월 18일, 그녀는 79세의 늙은 몸으로 마침내 옥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교회 초창기의 한 지도자였던 정 약종의 아내답게, 그리고 교회 재건 운동의 큰 일군이던 아들 정 하상의 어머니답게 체칠리아 성녀는 떳떳한 순교를 한 것이다. -167~168p


  정 하상의 누이동생 정혜 엘리사벳 성녀는 오라버니보다는 두 살이 아래였다. -168p


(중도생략) 


  사형장으로 떠나는 순간에도 엘리사벳은 옥중의 교우들에게 말하기를 “밖에 살아남아 흉년으로 고생할 교우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였다. 이처럼 그녀는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천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철저히 사랑하였다.

  1839년 11월 24일, 마흔 세 살 성처녀의 일생은 형장의 칼날 아래 순교의 꽃으로 피어났다. 이로써 정 약종 아우구스띠노가 천국에 마련해 놓은 집의 방 여덟 개가 다 차게 되었다. 169~170p


-출처 : 한민족이 낳은 한국천주교회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전 5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영원한 승리-(책임감수 오기선 신부 류홍렬 박사, 성요셉출판사, 1984 5 25 인쇄/1984 5 30 발행)


② 우리는 『마리아 고레띠』를 20세기의 성녀인 「아네스」라고도 하는데 그가 갖은 압력을 받으면서도 죽음으로써 깨끗한 동정을 지켰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양친은 고용살이를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 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로마 남쪽 꼬리날도라는 벽촌에 가서 농사를 지었다. 그들의 재산이라고는 손바닥만한 농토에 기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조그만 집 한 채 뿐이었다.

「마리아」는 1890년 매괴성월, 즉 10월 16일에 셋째 딸로서 태어났다. 그의 양친은 성모를 공경하는 뜻으로 그를 「마리아」라 불렀고, 또 탄생일이 성녀 「데레사」 축일 다음 날이므로 「데레사」를 덧붙이어서 「마리아 데레사」라 하였다. 그러나 보통은 「마리에띠」(작은 마리아라는 뜻)라 불렀다.


(중도생략)


“당신이 하려는 짓을 하느님도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나도 그런 일을 하면 가만 있을 줄 알아요?”하며 「고레띠」는 그에게 끝끝내 대항하였다. 도저히 안될 줄 안 「알렉산델」은 그 때를 위하여 미리 준비하여 두었던 단도를 꺼내어 「고레띠」를 닥치는대로 찔러 열 네 군데의 상처를 입혔다. 「고레띠」는 쓰러졌다. 죽은 줄 안 「알렉산델」은 어디론가 도망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돌아온 어머니가 유혈이 낭자한 「마리에띠」의 모양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즉시 차에 실어 네쓰노 병원에 운반하여 갖은 치료를 다 해 보았으나 아무 효과도 못 거두었다. 하느님께서 그의 순결한 순교에 대한 월계관을 씌워 주시기 위하심이었으리라.

“엄마! 물 한모금만.” “「마리에띠」야, 그건 안된다. 선생님이 안된다고 하신다.” “한 방울만 입술 축일 정도로.” “마리에띠」야, 심자가상의 예수님을 생각해라. 엄마가 왜 모르겠니. 그렇지만, 너를 위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고통은 스물 네 시간을 끌었다. 봉성체를 시켜 주기 위하여 오신 신부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마리에띠」, 너도 알다시피 주께서는 십자가에서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았니? 너도 너를 이 같이 참혹하게 한 그 사람을 그렇게 용서해 주겠니?” “예, 신부님. 나도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이 죽은 뒤에 천국에서 내 옆에 올 수 있게끔 기도하겠어요.” 그리고, 그 입에서 마지막으로 울려나온 말은 “엄마, 아빠가…”였다.

「마리아 고레띠」는 그로부터 45년이 경과한 1947년 4월 27일, 성 베드로 대 성전에서 소학생들을 합한 30만이란 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시복식을 받았고, 그로부터 3년 후인 1950년 6월 25일에 시성식을 받아 성인이 되었다. 또한 그를 위한 많은 저서와 논설이 세계 각국어로 발표되었고, 그에 관한 영화도 제작되었다. 그를 살해한 범인은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한 후 회개하였다. 「마리에띠」의 어머니는 다행히도 그 딸의 시복식과 시성식에 참례할 수 있었다. 예식에 참례한 많은 청소년 군중은 그를 보고 만세를 불렀다.


-출처 : 한민족이 낳은 한국천주교회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전 5권) -세계성인들의 생애 편-, 성요셉출판사, 1984 5 25 인쇄/1984 5 30 발행)


***


☞ 어디 보자. 두 예에서 보듯 천국에서는 결혼하는 게 없지만 함께 할 수는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잘 때는 부부와는 다르게 한 방을 쓰지 않는 것 같기는 하다. 남녀유별이다. 즉 부부였다고는 하나 남녀일 때는 잘 때 떨어져 자야 한다는 점이다.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 말이다. 결국 결혼은 없으니 성생활은 없을 것이고 자녀도 낳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이 우주에 수많은 행성을 만드신 이유는 사람들이 억대가 아니라 조, 경으로 따질 정도로 많아지길 원하신 것은 아닐까. 십만 명의 지도자보다 수천억 명의 지도자가 더 좋은 법이다. 낙태 좋아하는 사람들 참 안 됐다. 뱃속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무참히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능치처참도 혀를 내두를, 하느님의 큰 즐거움까지 방해를 했으니 말이다.


  마리아 고레띠는 여자이고 정약종은 남자이다. 마리아 고레띠는 서양이고 정약종은 동양이다.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삼면이 바다라고 한다. 나는 반도란 말을 안 쓴다. 정약종, 마리아 고레띠 모두 초창기 엄청난 박해를 받은 나라에서 태어났다. 마리아 고레띠는 이탈리아, 정약종은 조선이다. 두 분 모두 꿈과 관련이 있다. 정약종은 부인의 꿈에, 마리아 고레띠는 알렉산델의 꿈에 각각 나타났다. 정약종은 첫 번째 칼날에 목이 다 잘려지지 않았다. 일어나 성호를 긋고 두 번째 칼날에 하느님 나라로 갔다. 마리아 고레띠는 칼에 열 네 번이나 찔렸다. 칼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함께 있는 것까지 막으시지는 아니하신다.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국에서도 사랑했던 또는 용서한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은총을 ‘성녀 마리아 고레띠 효과’라고 한다.


  부활 직전까지(최후의 심판 직전) 적용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 내용을 보지 못했거니와 성령께서 아무 것도 드러내 주지 않으셨다. 하긴 나의 모든 능력은 성령의 도우심이니 나는 내세울 것도 없고 성령 없이는 나는 낙제생 축에도 끼지 못한다. 이는 마태오 사도께 여쭈기 바란다. 아니면 나중에 하늘나라 가면 직접 경험하든가 하면 된다.


  자기 인생을 하늘나라에 거는 것, 절대로 손해가 나는 장사가 아니다. 천국백성권도 공짜, 집도 공짜, 공원도 공짜, 공짜, 최고급 포도주도 공짜,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 하늘나라는 왜 염두를 하지 않을까.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일까. 그러면 완전한 공짜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손해 안 난다.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느님은 조그만 시험을 하시고 주실 때는 엄청나게 주신다. 무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