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문학관/에세이 25

노아의 홍수와 대륙 이동

노아의 홍수와 대륙 이동 ·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 생각난다. 지구과학의 혁명이었다. 물리학에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있다면 지구과학에는 알프레트 베게너가 있었다.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세계지도에서 탄생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는 것이 과학분야에서 대(大)업적을 남기는 좋은 길이다. · 중학교 2학년 때 독창적으로 ‘노아의 홍수와 대륙 이동’을 떠올렸지만, 시간적 차이로 무너졌다. 좋은 가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노아의 홍수는 대륙을 이동시킬 만한 증거가 될 수 없었다. · 나는 지구과학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다. 지구과학 선생님은 직접 뭐든 만들어 오는 것을 숙제로 내주셨는데, 역시나 창의성을 중요시하셨다. 조립식 완구를 조립해 오는 것보다 창작품에 점수를 더 주셨는데, 지구과학 선..

아이작 뉴턴과 나의 공통점 (사색)

학교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색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다. 아주 본능적으로 사색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땅에 빛을’이란 책에서 사색하는 성직자의 사진을 본 후로, 나의 무의식 속에는 사색이 자리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색을 하겠다는 의식이 없이 순간적으로 사색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 사색을 처음 시작하게 된 때는 체육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있는 게 사색인지 몰랐다. 다른 학생들은 운동을 했지만, 나는 혼자 운동장을 걸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저것은 무엇인가?’ 식이었다. 내가 사색을 처음 시작했을 때, 반 친구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골대는 축구 골대가..

아이작 뉴턴과 나의 공통점 (사색)

학교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색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다. 아주 본능적으로 사색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땅에 빛을’이란 책에서 사색하는 성직자의 사진을 본 후로, 나의 무의식 속에는 사색이 자리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색을 하겠다는 의식이 없이 순간적으로 사색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 사색을 처음 시작하게 된 때는 체육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있는 게 사색인지 몰랐다. 다른 학생들은 운동을 했지만, 나는 혼자 운동장을 걸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저것은 무엇인가?’ 식이었다. 내가 사색을 처음 시작했을 때, 반 친구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골대는 축구 골대가..

태상혁명론

고3 때부터, 나는 태상혁명론으로 향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정도전은 맹자의 ‘역성혁명론’이었다. 역성혁명론이란 ‘왕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힘을 사용해 왕조를 바꿀 수 있다’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온 ‘태상혁명론’이란, 한민족의 국민성을 세계 3위 이상으로 끌어올려 유태인, 게르만에게도 뒤지지 않는 국민의식과 민족 응집력에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훗날까지 하면, 이를 위해서는 썩은 정부를 어떤 수를 써서라도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나는 같은 반 친구에게 내가 디자인한 태상기를 보여줬다. 친구는 “그게 뭐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 나는 “태상혁명기”라고 대답했다. 태상혁명기(太上革命旗), 줄여서 태상기(太上旗)이다. . 한민족의 국민성을 세계 5..

신앙생활마저 방해받는 한국의 중·고등학생들

자녀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교회(성당), 절에서의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그런다고 자녀가 성공하는 게 아니다. 부모가 자녀의 종교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순전히 대학입시 때문이다. 자식이 대학에 가야만 출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비롯해 몇몇 간판대가 출세하는 장소로 적격이라고 한국의 부모들은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누구들 말대로 한국의 간판대가 엄청 대단한가 보다. 1994년, 나는 대덕대학교 제3회 생금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도 간판일까. IQ 두 자리가 인류 역사상 10대 창조적 두뇌에 포함되면 서울대 전 역사가 꿈꾸지도 못할 출세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근접거리와 달란트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근접거리는 어느 신문사 시사주간지에서 표절했다. 헤일-밥 혜성의 천구궤도가..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공교육정책 (전두환정권)

이제 전두환 정권 때의 공교육에 대해 남길 생각이다. 첫 번째 출판 책 내용에 보충을 해서 말이다. 전두환 정권 때의 공교육이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공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교육부(문교부) 장관은 누구였을까.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인사정책이 탁월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 중 하나겠지만 말이다. 김재익, 함병춘 등을 중용한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나마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은 전두환 정권의 그런 위대한 공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전두환 정권처럼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극과 극을 달리는 정권도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정책 VS 광주학살이다. 하여간에 그 당시의 공교육 정책은 세계 어디에다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유태인의..

가소로운 획일교육 (지난 세기(20세기)에 남긴 글)

가소로운 획일교육 (지난 세기(20세기)에 남긴 글) ·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물리학으로 이끌림을 받았다면 아인슈타인에게도 뒤지지 않을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었을 텐데, 그 역시 타격을 받은 채 30대가 되어 있었다. 천리마가 수레나 끌면서 비참하게 짓밟힌 상태였다. 아울러 그의 모습은 의학연구소의 소장을 연상하게 한다. 그가 의학을 전공했다면 세계적인 의학자가 될 수 있었겠다. 노벨 생리·의학상에 다가갔겠다. 제대로 된 신약 몇 개 개발해도 엄청난 액수의 달러를 버는 사람이 될 수 있었겠다. · 한국의 교육제도는 몇천억, 몇조(단위:원) 이상으로 놀 사람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IMF 한파 타령을 한다. 그런 걸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한다. · 아주 젊은 여자(20대 초반)가 우리 가게로 들어..

바보 같은 사람 또 하나

바보 같은 사람 또 하나 . 여자 마음 하나 얻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하겠나. 나 말이다. 머리가 다 아프다. 학문과 예술에 있어 인류 역사상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들 그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지금 죽여주소서. 살아봐야 별 의미 없겠다. 너무 우울하다. . 이런 바보 같은 사람한테 뭘 기대하시겠다고 아직도 하느님은 미련을 못 버리고 계실까. 요나보다도 훨씬 더 못난 사람이 아닌가. 너무 무능력하고 아주 나약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서울대 인문계(경성제대) 다니는 사람이나 졸업한 사람을 알아보소서. 에여, 답답하다. . 행복하여라. 자녀가 많은 사람들, 키울 때는 힘들어도 자녀들의 성공 때문에 행복에 겨워 몸 둘 바를 모르리니. . 불행하여라, 낙태를 일삼는 이들, 자신이 죽인 생명을 보게 되..

한국 대통령 아뿡다라 (이래도 하느님(하나님, 알라님)이 안 계시다고요!!)

[한국 대통령 아뿡다라 (이래도 하느님(하나님, 알라님)이 안 계시다고요!!)] · 1. 박정희 대통령 : 나와 근접거리가 작용하는 대통령 · 1966년 장면 전 총리가 영친왕(이은)도 입원했었던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장면 전 총리를 문병 갔다. 박정희 대통령..